커피 전문점이 계몽주의의 태동에 그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의 일정 부분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마셨던 것 떄문입니다. 왜냐하면 커피나 홍차가 영국 문화로 전파되기 전에는 지식인이건 대다수 농부건 할 것 없이 다들 날이면 날마다, 새벽 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셔댔기 때문입니다. 술은 주간에 마시는 음료였습니다. 아침 먹으면서 맥주 조금, 점심에는 와인 약간, 특히 1650년 경에는 여기에 약간의 진도 곁들이고 하루를 마무리 할때 거기에 약간의 맥주와 와인을 더하죠,
그 시절 물은 마시기에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술이 건강을 위해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커피 전문점이 번창할 때까지 실제로 전체 인구가 하루종일 술에 취해있던 것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땠을지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이 살면서 만일 온종일 술을 마신다면 말이죠, 뭐 더러 그런 분도 있으시겠지만,
그러다 여러분의 삶에서 억제제를 흥분제로 바꾸었다면 당연히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더 영리해지고 기민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국이 홍차나 커피 같은 음료를 마시면서부터 위대한 혁신이 꽃을 피웠다는 것은 우연히 아닙니다
-미국의 작가 스티브 존슨-
그 이전까지 식수 품질이 좋지 못해 대용으로 중세까지는 술을 마시다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이후부터 술에서 깬 유럽인들은 르네상스를 이루어 냈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16세기 함부르크 사람들은 1년 맥주 약760L를 마셨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 1년에 100L 수준으로 급감했다. 다만 현재는 수질 때문에 술을 마셨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가 계속 나온다. 사실 술을 빚는 데에 물이 상당량을 차지함을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좋은 술을 빚으려면 당연히 물도 좋아야 한다. 이렇듯 커피는 주로 이슬람권에서 전파가 되었기에, 19세기 까지만 해도 아라비카를 비롯하여 이슬람권 커피가 중심으로 퍼졌는데, 유럽에선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에 처음 생겼다. 1554년 시리아인 하킴과 샴스가 개업하였다고 한다. 카흐베하네는 17세기 무렵부터 이스탄불에 보편화 되었는데, 늘어나는 카흐베하네에 대한 불만이 생겨났다. 1611년에는 이집트 총독이 카흐베하네에서 반정부적인 언동이 많다고 커피 판매와 같이 카흐베하네를 금지 했다가 커피를 좋아하던 술탄 아흐메트 2세의 분노를 사서 총독에서 쫒겨난 일도 있었다 특히 17세기 오스만 제국에선 특권 계급인 예니체리와 황태후 등 하렘이 무능한 술탄 대신 정국을 주도했는데, 이들과 결탁하여 사치와 부패를 이어가던 세력이 바로 커피의 확산을 주도한 수피들이었다. 카흐베하네는 이런한 수피들의 거점이었고, 동시에 예니체리의 군대 외 사업으로서 그들의 고수익원이였다. 당시 이스탄불의 카흐베하네는 대부분 예니체리의 수중에 있었다. 따라서 기강이 해이해지는 제국을 바로 잡고자 출현한 야심찬 술탄 무라트 4세 시대에 집권 세력이 되었고, 술탄이 실권을 장악한 이듬해 1633년에 1차 커피 금지령을 내리며 카흐베하네에 탄압을 시작하였다.
무라트 4세 본인 역시 커피 자체는 좋아했지만 카흐베하네에서 벌어지는 지식인들의 비난을 싫어해서, 가혹한 금주령,금연령으로 유명했던 그는 커피에 대해서도 이를 어겼던 인원 약 3만명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반동인지 무라트 4세 사후 즉위한 술탄 이브라힘은 예니체리에 의해 폐위되었다. 뒤이어 옹립된 메흐메트 4세의 시대엔 1651년 태후 괴셈이 암살되고 카디자델리 파를 후원하던 쾨프륄뤼 가문의 섭정이 시작되며 카흐베하네에 대한 탄압이 재개되었다. 1656년 지정된 2차 커피 금지령을 통해 괴프륄뤼 가문은 정적들을 제거하며 무소불위의 권위를 누렸다. 비록 1차와는 달리 기회는 있었지만 정치적 이용은 극대화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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